풍경이 있는 국내여행/충청남,북도여행

(서천여행) 덩그런히 무얼 바라보고 있을까, 비인 성북리 오층석탑

선 돌 2011. 6. 21. 00:30

 

 

 

 

              

 

                               비인오층석탑[ 庇仁五層石塔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에 있는 고려 초기의 석탑.

                 높이 6.2m. 보물 제224호. 이 탑은 백제시대 석탑을 모방한 같은

                유의 많은 석탑 중에서도 가장 충실하게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

                 (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국보 제9호)을 모방하고 있다.

                

                 탑의 구조는 기단부와 탑신부(塔身部), 그리고 상륜부(相輪部)의 세 부분으로

                 형성되었는데 기단부를 받고 있는 지대석(地臺石)은 몇 장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결구하여 2단을 이루고 있으나 현재는 상층의 1단 하대만이 보이고

                 그 밑의 부분은 파묻혀 있다.

 

                 기단부는 1층으로서 4매석으로 구성된 하대석(下臺石) 위에 놓였는데

                 네 모서리에 방형의 돌기둥을 하나씩 세우고 그 사이에 면석(面石)을 다른 돌로

                 다듬어서 세워 모두 8매석으로 기단 면석을 조립하였다.

                 각 모서리의 방주(方柱)는 마치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도 같은데

                약간의  배흘림이 있어 전체의 형태는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서천여행을 위해 길을 떠나 잠간 휴식을 취하려  정안 휴게소에 들렀을 때, 

                        주말여행을 떠나는 많은 사람이 보인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  비인오층석탑에 오니, 초등학생들도 역사공부를

                      위해서인지 석탑주변에 둘러 앉아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다. 

              각 모서리의 방주(方柱) 위의 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덮였는데 하면의 부연(副椽 : 탑의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나 상면의 굄대가 없으며 기단부 전체의 규모는 탑신부에 비하여 좁아서 안정감이

             없다.

 

             탑신부의 초층탑신은 네 모서리에 큼직한 방형 석주를 1주씩 세우고 그 사이에

             별개의 석재로 조성한 벽면석(壁面石)을 끼웠는데, 전체가  ‘상촉하관(上促下寬:

            위는 좁고 아래는 넉넉함)’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다른 조식은 없다.

 

             2·3층의 탑신은 초층에 비하여 높이와 너비가 지나치게 감축되었으며 1석으로 조성하고 있다.

             각 층의 탑신석 위에는 높직한 2단의 받침가구가 있는데 초층에서 하단은 4매석으로

            각형(角形) 받침을 만들고 상단도 역시 4매석으로 된 소로〔小累〕 모양의 부재를 얹어

            정림사지오층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옥개석은 현재 4층까지 남아 있는데 이 부재도 상층부로 올라가면서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그구성석재가 줄어들고 있다.

            초층옥개석은 8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었고 형태는 평박할 뿐 아니라 매우

            넓어서 기단부보다도 광대해졌다.

         

           추녀 밑은 수평으로 전개되다가 네 모서리에 이르러 약간의 반곡(反曲)을 이루고

           전각(轉角)에서는반전(反轉)을 보이고 있다.

           낙수면의 경사는 매우 완만하고 네 모서리의 우동형(隅棟形)은 전각에

           이르기까지 거의 수평을 이루었으나 합각머리는 예리한 선을 이루고 있다.

 

            낙수면 정상에는 1매의 판석을 한 단 놓아 그 위층의 탑신을 받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형식은 2층이상에서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2층 이상에 이르러서는

            그 규모의 차이 때문에 옥개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었다.

             

      

 

                       관리사무소 옆의 고목나무의  운치가 한결 5층석탑 의 가치를 빛나게 해 주는 것 같다. 

 

             상륜부는 완전하지 않은데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크고 작은 석재가 겹쳐 놓이고 그 위에 방형의 보개(寶蓋)가

             있으며 다시 방형의 석재가 놓였으나 이 형태는 원래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석탑은 각 부의 양식과 건조수법에서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의 세부양식을 충실하게 모방하였으나

            기단이 협소하고 2층 이상의 탑신석들이 지나치게 감축되고 각 층 옥개석이 지나치게 커서 안정감을 잃고

            있다. 각 부재의 치석 및 구조·형식 등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文化財大觀-寶物 2-(韓國文化財保護協會, 大學堂, 1986)   

 

 

이 곳에서 선돌이 느끼는 건, 우리가 36년간 일제하에서, 그리고 조선시대 등을, 거치면서

문화재 보호의 등한시, 외세에  의한 약탈 등으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어 초라해진 백제

역사의 흔적! 마음속에서 치미는  허전함은 떨쳐버랠 수가  없다. 이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대한민국의 국력를  더욱더  키워 이런 백제의 망한 모습을 후손에게 남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소: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