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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황산대첩비지 와 피바위

선 돌 2021. 10. 3. 20:21

이성계가 황산벌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설치한 황산대첩비지로 

태조 이성계의 역사탐방을 떠나 보겠습니다.
남원 국도 24번 길을 따라 여원재 정상 부근에 자리한 여원치 마애불을 친견하고 

황산이 보이는 황산대첩비지로 이동하였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태조 이성계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탐방 길은 비소식에 하늘은 

약간 흐린 모습을 보였습니다.



#전북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황산대첩비는 동편제 마을에서 버스를 하차한후 약 5분거리를 도보하면 만날수 있는 

거리이기에 졸졸졸 물흐르는 다리를 건너갑니다.



왜구를 물리치고 고려를 구한 1392년 7월17일 황산대첩을 치룬지 12년후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에 등극하였다.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고려 우왕 때(1380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선조 10년(1577년​) 왕명을 받아 황산대첩비를 건립하였다.



삼문으로 들어 가기전 황산대첩비를 파괴한 일본의 만행을 알기 쉬운 만화로 제작하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성계의 황산 전투 대승을 이룬 황산대첩비는 3천 남짓의 병력으로 1만명이 넘는 

왜구를 섬멸하였다고 합니다.



삼문에 들어 서니 중앙에 대첩비각이 건립되어 있어 곧장 들어가 보았습니다. 



높이 4.25m의 황산대첩비는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파편만 남아 있는 정도였으나 

1957년에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그대로 원형과 똑같은 대첩비를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은 이성계의 위업이 새겨진 원래의 황산대첩비의 글씨를 읽지 못하도록 
정으로 쪼아 뭉개고 파괴하였기에 남아있는 조각들을 모아 파비각안에 보관해 놓은것이라고 한다.
 





1882년(고종19) 운봉 현감 이두현이 세웠던 화수산 비각비가 훼손되자 1958년에 중건한 

황산대첩사적비입니다.



우왕 6년(1380년) 왜구들이 진포로 쳐들어와 최무선 장군이 500여척의 배를 불태우고 승리한것이 

진포대첩이며, 외구들이 남원 운봉에서 약탈을 일삼자 토벌 작전에 이성계가 이두란 장군과 

함께 적장 아지발도의 목을 베고 황상벌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어휘각은 석벽(石壁)에 도원수가 본인과 8원수 4종사의 명단을 새기게 하여 황산대첩이 

자신만의 공로가 아니라 여러 충신들의 공로임을 알리는 내용의 어휘(御諱)를 새겨 만든 비전으로 

어휘의 글씨 또한 훼손하여 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남원 황산대첩비지와 마주 보이는 남원시 인원면 황산(荒山)이 멀리 보입니다.



인월천 주변에 널따란 바위 표면에는 붉은색으로 물든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섬멸할 때 전사한 왜구들과 아지발도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7일간 물을 먹을수가 

없었다는 피바위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초록색 잔디가 가을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에 역사탐방 특별한 가을 여행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