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탐방) 내리는 빗방울마저 싱그러운 조선시대 궁궐 창덕궁 - 3
조선시대의 궁궐.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지정,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대조전을 나와 왼편으로 가면, 후원과 창경궁으로 갈 수 있으나,
내전의 마지막 탐방코스를 낙선재로 정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 밖에 ,징광루(澄光樓)와 경훈각,어차고,내의원,집상전(集祥殿),
보경당(寶慶堂),옥화당(玉華堂),소덕당(昭德堂) 등 소실,중건을 반복하여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물도 있으나, 후원의 예약탐방이 있어 시간상으로
둘러볼 수가 없어 다음으로 미룬다.
승화루와 담장이 연결된 낙선재가 담 안으로 보이네요.
승화루
낙선재 담장입니다. 예전에 서원이나 고택에서 보아 온 담장은 대개 토담이며, 높이가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낮은데 궁궐이라 다른긴 합니다. 그래도 모 특보가 우리의
"궁궐 담장이 낮아서 .......... " 하는 발언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지요.
낙선재.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고 있으나 근래에는 창덕궁에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건물로
창덕궁의 동남쪽에 창경궁과 이웃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승정원 일기』와 낙선재 상량문에
헌종 13년(1847)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된 건물로서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처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순조 28년(1828)에 건립된 연경당보다 20년 뒤에 세워진 곳으로
궁궐에 조영되는 주거 건축술로서 그 구성의 법식과 보존 상태가 훌륭하며, 특히 지형과 환경에 따라
자유 분방하며 다양한 건축물을 보여 주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대청이나 방이 앞 뒤로 문을 열 수 있도록 하여 바람이 통하게 하니 시원하겠습니다.
물론 겨울에는 무척 추울것 같아요.
대청마루.
굴뚝도 돌로 쌓아 올렸습니다.
이 조형물은 궁내 곳곳에 설치된 것이 보이는 데 무슨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낙선재에서 살았다는 이방자 여사(1901~ 1989년 4월 30일)
일본 국왕 메이지의 조카인 모리마시 친왕의 딸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과 정략적
약혼으로 마지막 황태자비(의민황태자비)가 되었다. 1945년 광복으로 일본 왕족에서 제외되어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불행을 겪으면서도 1962년 한국국적 취득후 활발한 사회사업에 전념하여
적십자 박애장 금장, 5 ,16 민족상,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지내온 세월> ,
<세계는 하나 > 등을 남겼다.
행랑이 쭈욱 둘러 있는 것이 후궁을 모시는 궁녀들의 처소일 거 라는 예상을 합니다.
수강재(壽康齋).
어릴 땐 민가에서도 자주 보았던 기와지붕. 이젠 쉽게 볼 수있는 게 아니지요.
이름이 " 壽 康 齋 목숨수, 편안할 강, 재계할 재 "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집 " 이라면 맞을까요.
낙선재에서 이방자여사와 함께 지내다 수강재에서 타계한 망국의 비운의 여자 덕혜옹주.
덕혜옹주(德惠翁主,1912년5월25일-1989년4월21일 )는 구 왕가의 일족으로 고종이 60세가
되던 해에 후궁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얻은 고명딸로 일본으로 끌려간 뒤(강제 유학),
일본인과의 강제결혼 등, 편치않은 생활로 병마에 시달리다, 한국으로 1962년 1월26일 돌아왔다.
댓돌이 없는 높은 툇마루는 목조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미적인 감각을 중시한 듯 하다.
낙선재와 수강재의 탐방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담처럼 길게 늘어선 행랑을 본다.
자유스런 개별탐방구간을 마치고 해설사의 인솔하에 예약해야만 하는 후원(예전에는
비원이라 불렀음) 입구입니다. 오른쪽은 창경궁 출입구, 왼편이 후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관람방법 : 1) 개별 자유탐방이 가능한 창덕궁 3,000원
2) 후원관람은 예약필수(인터넷 가능) 5,000원 추가
문의:02-762-8261
홈페이지: http://www.cdg.go.kr/
월요일 휴무
창덕궁 가는길: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교통편 : *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3번 출구에서 돈화문까지 300여 m
* 시내버스 정류장 창덕궁에서 하차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