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여행] "육지속의 제주" 돌담이 아름다운 전통문화 한밤마을
돌담이 아름다워 "육지속의 제주"라 불리며,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문화마을/군위 한밤마을
팔공산의 한티재를 통하는 길이 뚫리기 전까지는 속세와
격리된 전통문화와 세거지 등을 간직한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의 한밤마을. 하지만 전통문화마을로서의 가치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과 부림 홍씨의
"남천고택" 그리고 대율리 "대청"이지요.
앞에 언급한 것과 같이 돌담길이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돌로 쌓은 담사이의 골목길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이런 돌담은 제주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경이 아닐런지? 아?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경북 성주에 가면 흙과
돌로 이뤄진 담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습니다.
한밤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는 밤나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감나무와 사과나무,호도나무가 많아졌다고 하며, 그 외의 산수유 구기자도 보입니다.
다른 곳의 감나무는 까치밥을 남기곤 다 땄는데 여긴 아직
주렁 주렁 많이도 열려 있습니다.
군위 상매댁 (또는 남천고택) 앞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닥을 덮어 깊어가는 가을의 운치가 더욱 돋보입니다.
사랑채인 쌍백당.
상매댁은 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으로, 당시 의흥현(義興縣)에서
최고(最古)의 가옥으로 전하며 "남천고댁"(南川古宅)이라고도 부르며,
본 가옥은 250여년 전에 부림홍씨 우태(禹泰)선생의 살림집으로 지었으며,
그후 주손(胄孫)들로 이어지면서 수차에 걸처 중수하였고,
사랑채 대청 상부에 "숭정후 상지즉위이년 병신삼월십칠일 신시 수주 상량"
(崇禎後 上之卽位二年丙申三月十七日 申時 竪柱 上樑)이라는 상량문으로 보아
이 시기는 헌종 2년 (1836)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가옥의 형태는 "흥"(興)자형의 독특한 배치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나, 해방후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모습만 남아 있고 대문채는 옮기면서 향(向)을
바꾸었고, 현재는 ∩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 사당이 있고 주위는 자연석
돌담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잣나무.
살림집인 안채
전통양식의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장작.
장독대에 항아리는 언제 보아도 정겹습니다.
요즘 이라면 콘크리트 바닥으로 미끈하고 평평하게
할 장독대가 돌을 쌓아 올린 모습도 정말 이채롭습니다.
후원의 정자.
사당으로 통하는 문.
사당안은 함부로 열고 들어가기가 어려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안채
담쟁이 넝쿨이 타고 올라간 돌담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룹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경북도 유형문화재 262호)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널찍하고 시원스런 대청이 있는데,
조선 초기 서당이던 이 대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누각형으로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1632년(인조9년)에 중창되어 여름엔 마을
노인들의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수백년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전통가옥들과 녹색 이끼로 담장으로 뒤덮인
나지막한 돌담길은 ‘여기가 제주도인가’ 싶을 정도이니, 육지속의 제주도라는 명성을
가진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부림홍씨 종택은 경절당을 비롯하여 중시조 9세조 경재선생의 불천위의 영위를모신
제천정, 문중사무실 등이다. 고려말의 충신 경재선생(1366~1392)은 국운이 기울자 낙향
하여 고려조에 대한 불사이군의 절의를 굳게 지켜 두문불출 은거하시다가, 임신년 7월17일
고려가 망하던 다음날 북향사배후 "신이 나라와 함께 죽나이다"하며 운명하였다 합니다.
마을 담장이 모두 돌로 쌓인 까닭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경오년(1930년)에
큰 물난리가 났는데 그때 떠내려온 돌이 무척 많았다고 하며, 그것을 가지고 담장을
쌓았다고 합니다.
마을의 집들 중 얼핏 일반 가정집과 구별되지 않는 작은 절.
석불 입상(보물988호)
높이 2.65 m의 불상이 둥근 대좌를 딛고 서있으며, 우아한 얼굴에
아담한 눈과 입을 지닌 이 불상은 옷주름이나 직립한 긴 하체 등 다소
경직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당당한 면모가 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마을의 자랑거리인 문화유산입니다.
마을초입의 길 오른쪽 초등학교 앞에는 200~300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전통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고풍스럽게 하며,
숲 중간에는 홍천뢰(洪天賚) 장군과 효자 홍영섭을 기리는 비석 2기가 서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의병대장이었던 홍 장군은 의병을 모아 이곳에서 훈련시켜 왜적을
물리쳤다 합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대율리 전통문화마을 표지석입니다.
한 편으론 마을에 콘크리트 건물도 들어서 있어 전통문화마을을 퇴색
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는데........
이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이라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돤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경주의 양동마을 못지 않을진 데......
아쉬운 마음도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표지석에 쓰인 문구처럼 "이 마을은 애향정신과 협동의식이
강한 곳으로고유의 전통 민속행사와 문화유적이 잘 전승
보존된 전통문화마을입니다." 란 글이 영원히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또한 국가에서도 이런 마을을 방치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위 치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전 화 : 054) 383 - 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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