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심금을 울리는 가야금 12줄의12곡 우륵의 집
심금을 울리는 가야금 12줄의12곡 우륵의 집
엄마품처럼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초가.
우륵 박물관을 관람한 후, 박물관 바로 옆 마을에 조성한 우륵의 집을
찾아 봅니다. 가얏고 체험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우륵의 집을 생가의
형태로 지은 것 같으나, 역사적인 고증이나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륵은 본시 대가야국(大伽倻國) 사람으로 가실왕(嘉實王)의 총애를 받았으며,
왕의 뜻을 받들어 12현금(絃琴:가야금)을 만들고 이 악기의 연주곡으로 12곡을 지었다.
551년(진흥왕 12) 신라에 투항, 제자 이문(尼文:泥文)과 함께 낭성(娘城)에 살다가
진흥왕에게 알려져 하림궁(河臨宮)에서 이문과 함께 새 곡을 지어 연주, 이에 감동한
진흥왕의 배려로 국원(國原:忠州)에서 살게 되고, 552년 대내마(大奈麻) 계고(階古)와
법지(法知) 그리고 대사(大舍) 만덕(萬德) 등 세 사람 에게 각각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쳤다.
그 후 진흥왕에 의하여 가야금곡이 궁중음악이 되고, 하림조(河臨調) ·눈죽조(嫩竹調)의
2조(調)가 생겨 모두 185곡의 가야금곡이 남게 되었다.
우륵이 가야국에서 지은 12곡은 《상가라도(上加羅都)》 《하가라도(下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상기물(上奇勿)》
《하기물(下奇勿)》 《사자기(獅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등이며, 이들 곡이름은 대부분 당시의 군 ·현의 이름에서 따 온 것으로 해당지역의 민요 연구에
긴요한 자료가 된다. 충주의 금휴포(琴休浦)와 탄금대(彈琴臺)는 모두 그 이름이 우륵에게서
유래한다고 한다.
우륵의 집은 2동의 초가로, 안채와 악기공방으로 지어졌는데 안채는 가야금 악기 연주체험공간으로
악기공방은 우륵선생의 악기창제 체험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초가의 아늑한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 속의 한 장면같아요.
우륵은 가야가 멸망의 길로 들어설 무렵에 대가야에서
살았던 것으로 대가야 가실왕의 명을 받아
12현금(가야금)을 만들고, 그 연주곡으로 열두 곡을 작곡했다.
이 곳에는 간단한 농기구와 가야금 제작에 사용하는 나무들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야금 제작용 목재.
마당에 있는 초가의 정자와 우물은 어릴 적 마당에서 구슬치기, 비석놀이(돌을 세워놓고 멀리서
돌을 던져 맞치기도 하고, 온몸의 부위에 얹어 상대방 돌을 맞추어 쓰러뜨리는 계임), 딱지치기 등
을 하던 기억이 불현듯이 떠오르는군요.
안채.
"우륵의 집" 유일한 안내판
마당에 설치된 초가 정자.
울타리 밑의 장독.
우물의 형태는 개실마을에서 보았던 모습과 모양이 비슷하며,
우물의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로 물이 있더군요.
신발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분들이 쉼터처럼 사용하는지 대화소리가 도란도란
안으로 부터 들립니다.
위 치 : 걍상북도 고령군 쾌빈리 ( 정정골 가얏고 체험마을 뒤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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