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여행) 2,000 여년 선조의 얼과 항일정신이 깃든 나주목 객사 금성관
2,000 여년 선조의 얼과 항일정신이 깃든 나주목 객사
금성관
나주곰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밖에 나오니, 옆에 망화루란 현판의 멋진
누각이 있어 주변에 여쭤보니 나주객사 금성관이라 합니다. 이런 곳을 두
고는 못 지나치는 "참새의 방앗간" 기질이 다분한 선돌은 카메라를 메고
후다닥 안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나주객사 금성관의 출입문 격인 외삼문 망화루(望華樓)! 멋지게 담고 싶었으나,
선돌처럼 곰탕으로 점심을 멱고나온 사람들이 쉬고 있어, 비키라 그럴 수도 없고,
에이....찰깍....
나주목 객사 금성관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삼문 망화루는 세칸 규모의
2층 문루입니다. 금성관 정문은 따로 있었다고 하는데, 1966년 나주공원
충렬사로 이전하였으며, 이곳은 새로 복원하였습니다.
. 중삼문,
나주목 객사 금성관 중삼문.
나무목 객사 금성관의 외삼문과 내삼문의 중간에 있던 출입문입니다. 삼문은 사닫이나
제를 올리는 곳의 출입문 건축양식인데 이 곳에서도 제를 올렸던 곳인 것 같아요. 길도
세가지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신도,어도, 그리고 또하나의 길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군요
금성관을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동익헌, 서익헌이 배치된 객사.
나주 금성관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제 제 2호로 조선시대 성종 6~10년 애 나주목사
이유인이 세웠고, 일제시대에는 청사로 사용하였던 것을 1976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였습니다.
동익헌인 벽오헌은 관찰사의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는데,조선초기 이행
관찰사가 벽오동나무가 가까이 있어 벽오헌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1592) 의병장 김천일이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가졌으며, 명성황후
시해 당시에도 이곳에 관을 모셔 항일정신을 높인 애국 애족의 발상지가 되기
도 했습니다.
서익헌.
객사내 우물.
650년 이상의 은행나무 보호수와 주변 고목들의 위용도 선대의 문화유산이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머리 숙이게 합니다. 우리의 문화유
산은 관리도 잘 하여야 하겠지만 국력의 약화로 인한 외세의 훼손도 적극적
으로 막아야 하겠지요.
위 치 : 전라남도 나주시 과원동 109-5
전 화 : 061) 333 - 5891
나주시 문화공보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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