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여행) 오랜 역사속에 잠자다 깨어나 장엄한 빛을 발하는 국보 201호의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오랜 역사속에 잠자다 깨어나 장엄한 빛을 발하는
국보 201호의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천년고찰 지림사
봉화에는 신라시대 창건되었다는 천년고찰이 청량산의 청량사, 문수산의
축서사는 산중에 있어 눈길에는 차로 오르기가 불가능하였으나, 또하나의
천년고찰 지림사는 평지에 있어 접근이 쉬웠습니다. 세 사찰중에 가장 규모가
적은 지림사는 국보 제 201호인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
작하여 불교신도를 비롯하여 탐방객들이 온다고 합니다.
지림사 전경.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대사찰이었다고 합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입니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
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흙속에 묻혀있던 마애여래좌불을 공사중 발견하였다고 하여 전각(?) 뒷부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 봅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삼존불좌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
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습니다.
불상옆면에는 거북이를 배치하여 부처님을 향하는 불심을 표현하려 한 듯하며,
신기하게도 광배에는 풀 한포기가 끈끈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다시한 번
봅니다.
원통전.
대사찰의 전각 중 마지막으로 남았던 전각이 원통전이라 합니다.
원통전 안에는 산신탱화와 신중탱화 그리고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웅전
대웅전 뒤 절벽바위에 조각된 삼존불과 삼층탑의 모습,
아마도 신라시대에는 석불들이 많았던 것이 하나의 조류였던 것처럼 생각됩니다.
1980년 9월 16일 국보 제201호로 지정된 높이 4.3m의 마애여래좌불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서 불상의 가슴부분과 무릎부분이 파손되어 있으나, 국보로
지정될 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이니 잘 관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볼 수
있도록 허여야 하겠습니다.
위 치 :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1마애불은
지림사( 북지리 마아애여래좌상奉化北枝里磨崖如來坐象 )
전 화 : 054) 679 - 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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