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엔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죽어선 왜구로
부터 나라를 지킨 문무대왕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文武王)은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
(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여, 왕의 유언대로 동해의 대왕암에
장례를 치러, 사람들은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
대왕암은 육지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으며,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배치하였습니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큰 바위(화강암)가 둘러 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아마도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는 방법과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크게 세개의 바위로 이뤄진 대왕암을 당겨 보니, 비석같은 것이 보입니다.
대석의 안치 방법과 유골의 수장 여부에 대하여 그 동안 많은
의문점이 있었는데, 2001년 3월 한 방송사에서 역사연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초음파 탐지기 등을 이용하여 바위의 조직과 바위의
내부 및 수면하를 조사한 결과, 대왕암 내부 또는 아래에 유골이나
부장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합니다.
갈매기가 비행하며 대왕암위를 맴돕니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km 떨어진 동해변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절의 금당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용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감은사의 동쪽에 대왕암을
정면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에 이견대(利見臺)를 짓고 신문왕은 이곳에서
대왕암을 망배(望拜)하였다고 합니다.
음력 삼월 삼짓날이 되면 용왕제들 지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무속인
들이 온다하는 데 오늘이 그 날이라 합니다.
사나운 파도와 세찬바람은 서있는 사람을 사정을 두지않고 흔드는데
바람에 모래까지 섞여 얼굴을 때리는군요.
제물을 차려놓은 모습.
또다른 일행의 제를 준비하는 모습.
문무대왕의 용왕신이 대단한 모양인지, 이렇게 많은 텐트가 같은
목적의 제를 지내기 위함인 듯 합니다.
해변을 나오는데, 가판대위의 꾸들꾸들하게 말린 이름모를 생선은
짠 바다내음을 풍기지만 집에가서 음식을 해 먹으면 맛이 있을 것 같지요.
문무대왕은 다른 왕처럼 왕릉를 만들지 않고, 검소하게 바닷가에
뼈를 묻고 왜적을 물리치려 하였지만 후손들은 감은사와 이견대를
지어 대왕을 높이 기렸습니다.
이렇게 역사는 짧은시간에 평가되는 것이 아닌데 보여주기 위해서
몰아부치거나, 반대파를 궁지에 몰기위해 갖은 가설을 동원하여 잘못된
것처럼 호도하는 일이 없는, 건전한 대한민국이 가는 길을 역사는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위 치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불길리 28
경주문무대왕릉
전 화 : 054-779-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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