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성인 (殺身成仁) 정신을 높이 기리며,
의병장 장사진을 찾아본다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의병장인 장사진의 유적비가 보여
호기심과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선돌은 차를 세워 장사진
유적지를 둘러봅니다. .
입구의 돌계단이 정말 맘에 드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장사진은 당시의 인동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로 이사했다.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있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였으므로 이웃사람들은 의협인(義俠人)이라고 불렀다. 군위향교
교생으로 면학하던 중 임진왜란을 맞아 인동과 군위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맞섰다. 왜군은 그를 두려워하여 장장군이라고 부르며 장사진
부대가 있는 곳을 침입하지 못하였다. 인동에서 전투하던 중 복병에
포위당하여 적병이 휘두르는 칼에 한쪽 팔이 잘렸으나 다시 외팔로
싸우다가 불행히 순사하였다.
경상북도 기념물 122호 인 장사진 의병장 유적
사후에 절충장군수군절도사에 추증된 장사진.
1753년(영조 29) 군위현감 남태보(南泰普)가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에 고리비(故里碑)를 세워 장사진의 충절을 기렸다.
후세 사람들은 왜승을 포획한 장봉한(張鳳翰), 상주 전투에서 순사한
장홍한(張鴻翰)과 함께 ‘일문삼절(一門三絶)’ 또는 ‘삼의사(三義士)’
라고 칭송하였으며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 인근 주민들이 충렬사
(忠烈祠)를 지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증수군절도사 장공제단비(贈水軍節度使 張公祭壇碑) 와 함께 아주 검소한 묘가 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건물인데 문이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어 담넘어로 몇 번 셧터를
늘러 봅니다.
빈 집이라 관리를 안한 흔적은 있으나,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건물의 티가 나타난다.
당시의 상황에서 장사진 장군의 살신성인 (殺身成仁) 정신을 높이 기리며,
각박한 현시대에 본보기로 삼아 보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인지 모르지만,
후세를 위하여는 지켜져야 할 덕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치 :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 554
아래 추천버튼과 댓글한마디는 제겐 격려 입니다.
'풍경이 있는 국내여행 > 경상남,북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령)고령土 匠人의 魂을 만나다/ 대가야 박물관-1 (0) | 2012.01.01 |
---|---|
(고령) 심금을 울리는 가야금 12줄의12곡 우륵의 집 (0) | 2011.12.30 |
대통령상을 수상한 팜스테이 농촌마을 고령의 개실마을 (0) | 2011.12.27 |
1,500년의 넓고도 깊은 시공(時空)을 건너,악성 우륵을 만나다. 고령의 우륵박물관 (0) | 2011.12.26 |
운문사를 굽어보는 제비집같은 암자 북대암. (0) | 201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