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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고령土 匠人의 魂을 만나다/ 대가야 박물관-1

선 돌 2012. 1. 1. 10:41

 

 

 

 

 

            고령土 匠人의 魂을 만나다/

            대가야 박물관-1

 

          고령의 개실마을을 들렀으니, 대가야 박물관을 보지 않고는 고령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겠지요.

 

          대가야박물관에는 대가야시대 주거를 재현한 움집과 다락창고, 제철로유적,

         그리고 석탑, 석등, 불상 등 불교관련 문화재와 장대석, 맷돌, 절구 등 여러

         가지 석조문화재가 전시되어 있고, 

 

         대가야의 역사를 중심으로 고령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석기시대

        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ㆍ문화에 대한 설명과 유물을 전시해 놓아,

        대가야의 여명, 대가야의 성립,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 대가야이후의 고령의 테마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대가야박물관 전경.

 

       옥외에 재현된 대가야의 주거지와 창고 등 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과 불교문화재.

        고령군내의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고령향교 뒤편의 연조공원에

      전시하다가 2004년 12월 대가야박물관 야외로 옮겼다.

 

          석탑은 2중 기단위에 3층을 얹은 아담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기단은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당시 미군기의 폭격으로

       파손되어 흩어져 있던 것을 새로 복원하였고, 석등은 엎드린 연꽃받침위에 8각

       돌기둥과 연꽃받침을 세우고 다시 그위에 등불을 밝히는 등집이 있다.      

                      

         " 고령土 匠人의 魂을 만나다 " 란 테마로 구성된 기획전시실

 

한국 고대토기문화의 결정판으로 정평이 나 있는 가야토기, 그 가운데 시·공각적으로

가장 넓은 지역에 분포하며,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왔던 대가야 토기. 대가야 토기의 생

산과 공급의 중심지였던 대가야의 도읍지 고령.이처럼 대가야시대부터, 토기를 만들던

장인들의 기술과 정신은 끊임없이 계승되어, 그 맥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최상품의 분청자와 최고급 백자를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1층의 기획전시실은 연간 한, 두 번 정도 특정주제를 설정하여 기획특별전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으로 대가야 고령의 토기 백자기 등의 제작과 그 과정 등을 알 수 있도록 전시

하였습니다.

 

             도자기 생산도구 와 그와 관련한것,

 

 

      고령의 도자기와 도예가들

 

 

         대가야 토기에서 백자까지의 모양과 도자기의 여러문양들

 

 

                고령지역 도자기의 우수성은 1452년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상품(上品)”의 자

            기를 생산했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당시로서는 조선팔도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자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고령에서 생산된 도자기는 대궐에도 납품되어 왕실의 부엌에서 많이

            쓰였습니다. 전시장에는 고령지역의 생산유적인 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

            아 놓았고, 이를 통해 고령의 토기와 도자기속에 담긴 장인의 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백자 접시류 

 

       토기와 도자기류

 

 

          도자기터 가마를 재현한 모습.

 

          점필재 종택(개실마을 소재)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품과 유물 중의 일부를 전시중인데,

        

             점필재 김종직의 정치,사상 등를 전시하였습니다.

 

                   김종직(1431, 세종 13 ~ 1492, 성종 23)은 조선초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본관은 선산,

              자는 효관ㆍ계온, 호는 점필재, 시호는 문충이다. 1431년(세종 13)에 밀양의 서쪽 대동리(한골)

              에서 태어났다. 1457년(세조 3) 유명한 '조의제문'을 짓고, 1459년(세조 5)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다.

 

                  1470년(성종 원년) 함양군수로 부임하면서 문하에 학도가 운집하여 김굉필, 정여창 등이 수학

              하였다. 그 후 10여년간 문한ㆍ사관ㆍ경연관ㆍ전주 등의 청요직을 계속 맡았다. 1489년(성종 20)

              밀양으로 낙향하여, 학문과 후학지도에 전념하다가 1492년(성종 23) 8월 19일에 돌아가셨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부관참시 되었다가 1507년(중종 2)에 중종반정으로 벼슬과 시호

              등이 되돌려졌다. 1689년(숙정 15)에 영의정에 증직되고, 1708년(숙종 34) '문간(門簡)'에서 '문충

              (文忠)'으로 시호가 고쳐졌다. 밀양의 예림서원을 비롯하여 김천의 경렴, 선산의 자양, 함양의 백연,

              개령의 덕림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조의제문 등 점필재 종택의 유물들이 전시되었습니다. 

 

 

                                                    1457년(세조 3)에 지은 유명한 '조의제문'

                   

                                                위  치 :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대가야로 1203 (구 : 지산리 460)

                                                             대가야 박물관

                                                전  화 :   054) 950 - 6065 ,6071

                                                홈페이지 :http://www.daegaya.net

 

                      ▶ 선돌의 또 다른 고령 여행기를 보시려면

          대가야의 발자취-돌다듬는 소리/대가야박물관-2: http://blog.daum.net/ykp702/263 

         심금을 울리는 가야금 12줄의12곡 우륵의 집: http://blog.daum.net/ykp702/261 

         대통령상을 수상한 팜스테이 농촌마을 고령의 개실마을: http://blog.daum.net/ykp702/258

      1,500년의 넓고도 깊은 시공(時空)을 건너,악성 우륵을 만나다.고령의 우륵박물관: http://blog.daum.net/ykp70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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